도박으로 10억달러 날린 전 샌디에고 시장

▶ 9년간 수천만 달러 재산 탕진하고 자선재단기금까지 유용

그녀는 한때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 시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25세에 시의원에 당선되었고, ‘잭-인-더-박스’ 설립자인 억만장자와 결혼했으며, 보수적인 공화당 텃밭에서 진보적인 포퓰리즘의 바람을 일으키며 민주당 후보로 승리, 샌디에고 최초의 여성시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공직을 떠난 후 모린 오코너가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몰입한 것은 비디오-포커, 도박이었다. 9년간 무려 10억 달러 규모의 도박에 빠져들었던 그녀는 도박자금을 대느라 작고한 남편이 설립한 자선재단에서 200만 달러를 유용한 혐의로 지난 14일 법정에 섰다. 비아그라 구매

햄버거 체인 억만장자와 결혼했던 첫 여성시장
남편 사망 후 뇌종양, 은둔생활하며 도박에 빠져

이날 병들어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타나 검찰과의 유죄협상을 통해 혐의를 인정한 오코너(66)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도박중독이며 거의 파산상태라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변호사 유진 아이어데일은 오코너가 뇌종양으로 인한 합리적 사고능력 손상 때문에 도박중독에 빠졌던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보도진에게 오코너의 2011년 뇌수술 자료를 배부하기도 했다.

그녀를 기소한 연방검찰은 오코너의 급속히 악화된 건강상태 때문에 재판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 유죄협상을 통해 그녀가 중독 치료를 받고 앞으로 2년에 걸쳐 유용한 재단 기금을 상환하는 한편 체납 세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2년 간 재판 유예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코너의 10억 달러 도박행각이 시작된 것은 2000년 부터였다. 그 후 2009년까지 라스베가스와 샌디에고, 애틀랜틱 시티 등 전국의 카지노를 섭렵하는 동안 은행 잔고는 바닥나고 부동산은 매각되었으며, 소유품들은 경매에 붙여졌고, 지인들에게 빚이 늘어갔으며 급기야는 재단기금을 빼내기 시작해 재단의 파산을 초래했다.

카지노에선 최고의 귀빈이었다. 그녀가 뜬다하면 라스베가스 카지노들은 샌디에고로 전세기를 보낼 정도였다. 비디오-포커를 즐긴 그녀는 샌디에고 배로나 카지노에서 10만 달러를 따고 거의 동시에 라스베가스 벨라지오에서 10만 달러를 잃기도 했다. 도박판에서 딴 돈도 상당해 한때 10억 달러에 이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잃은 액수가 더욱 컸다. 결국 최종 결산은 1,300만 달러 손실로 집계되었다고 아이어데일 변호사는 전했다.

샌디에고 정가의 ‘대모’로 꼽혔던 오코너를 잘 알던 사람들은 그가 친구들과의 연락도 거의 끊은 채 왜 은둔생활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난한 파트타임 복서의 딸로 샌디에고에서 태어난 오코너는 13남매가 북적대는 가정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샌디에고 스테이트 유니버시티를 졸업하고 한때 수영 챔피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71년 25세에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였다. 시의원 출마동기도 흥미롭다. 대학 졸업 후 가톨릭 스쿨의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중 학생들을 인솔해 시의회를 방문했을 때 무례하게 푸대접 당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30년 연상의 남편 로버트 O. 피터슨을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유명 패스트푸드 햄버거 체인의 설립자로 진보적 후보들을 지원해온 공화당 큰손이었던 피터슨이 오코너에게 지원을 제의한 것. 정치적 개혁 요구가 높았던 여론에 힘입어 시의원에 당선된 오코너는 선거 기부금 제한 등 리버럴 어젠다 실현에 앞장서며 주민들의 인기를 확보했다.

2선 시의원과 항구 커미셔너 등을 역임한 오코너는 피터슨과 결혼한 후 샌디에고 정계에서 변종 정치인으로 꼽혔다. 남편 덕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그녀의 지지표밭은 샌디에고 정치의 경계선으로 꼽히는 인터스테이트 8번 남쪽의 저소득층 지역이었다. 그녀가 소수민들이 사는 이 지역을 방문할 때면 주민들이 나와 손을 흔들어 반겼다. 그곳에서 그녀는 모든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모린”으로 불렸다. 비아그라 구매

시장이 된 후엔 행인 연쇄피살사건 해결을 위해 경찰국장과 몰래 거리 암행시찰을 나서기도 했고 홈리스에 대한 대우를 살피기 위해 홈리스로 위장하기도 했으며 노동직 시공무원의 일상을 체험하기 위해 쓰레기트럭을 몰기도 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의 재임기간 동안 오코너는 가난한 소수계 주민들만이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인기 있었던 시장이었다.

시장을 그만 둔 후 오코너는 급격히 모든 공식생활을 접었다. 식당과 금융, 호텔사업 등으로 거부가 되었던 남편 피터슨은 장기간 백혈병을 앓다 1994년 78세로 숨졌다. 그 후로도 맥도널드 상속녀 조운 크록과 신문발행인 헬렌 코플리, 여배우 머시데스 맥캠브릿지 등 오코너가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오코너는 점점 더 깊숙이 도박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상실감을 도박을 통해 달래려 했다. ‘비탄 도박’이라고 알려진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고 아이언데일 변호사는 주장했다.

17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에게서 상속받은 4,000만~5,000만 달러의 도박중독 9년 만에 모두 탕진되었다. 250만 달러짜리 라호야의 저택도, 북가주의 1,950만 달러짜리 헤리티지하우스 호텔도 도박자금을 위해 모조리 팔아넘긴 오코너는 현재 거의 무일푼의 파산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9년간 10억 달러 도박은 엄청난 액수이지만 오코너는 카지노에서 돈을 가장 많이 잃은 사람들의 명단에 올라있는 것은 아니다. 그 명단의 상위권은 하루에 1억2,000만 달러를 잃은 것을 비롯하여 라스베가스에서 2억500만 달러를 잃은 사업가 테리 와타나베, 런던 카지노에서 단 3분 만에 230만 달러를 잃은 영국의 미디어 재벌 로버트 맥스웰등이 차지하고 있다.

출처 : 한국일보, 도박으로 10억달러 날린 전 샌디에고 시장

원본기사 : http://www.koreatimes.com/article/77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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